도시전설 세피아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예전에 이글루스에서 '최악의 책 표지'를 선정한 적이 있다. 별별 괴이한 표지들이 자태를 뽐내
는 가운데 이 소설의 표지도 그 중에 있었던 것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정말로, 표지를 보고 있으면 그다지 책을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이렇게 생긴 놈이 이 소설에 나오는건가 하고 호기심을 보이기는 하겠지만, 그리고 저 캐릭터가 나오는 소설이 좀 음
산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너무 기분나쁘게 생겼으니.

허나 호기심이 혐오감을 이겨서 결국 이 소설을 읽어본다면 내용은 표지와는 다르게 나름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아니, 어
쩌면 책을 다 읽을때까지 손에서 때어놓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도 이 작품에 실린 5개의 단편들은 몰입감이 뛰어난 수작
들이라 생각한다. 그 이유는 맛깔나게 번역된 글과 '도시전설'이라는 자극적인 소재 덕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작품들에게서 공
통적으로 발견되는 '과거'들 때문이기도 하다. 5개의 단편들의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핵심 키워드는 바로 과거다. 누군가와 친하
게 지냈던 기억, 타인에 대한 동경, 어렸을 적의 즐거웠던 추억과 같은 과거의 일들은 이야기 속의 현재에서 끔찍한 공포로 되돌아
온다. 보통 과거는 미화의 대상임을 감안 해본다면 이런 선택은 매우 이례적이나, 과거는 또한 바꿀 수 없는 것이기에 도저히 손쓸
수 없다는 점에서 오히려 공포를 배가시킨다. 이 딜레마에서 전달되는 싸늘한 한기가 이 작품의 진정한 매력.

그리고 공포외에도 작중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여러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게하는, 굳이 여름이 아닌 지금이라도 일독을
권하고 싶은 그런 소설되겠다. 표지의 압박에 굴하지 마시라.

by 디거 | 2009/09/26 01:38 | 서적 및 만화錄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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